
중국 북송(北宋)의 왕안석은 학문을 권하는 글에서 ‘여유 있거든 서재를 짓고, 여유 없으면 책궤(冊櫃)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조선 정조 때 재상 채제공은 ‘책궤명(銘)’에서 책궤의 덕을 칭송했다. ‘책 안에 도가 실렸고 너는 그 책 싣고 있으니, 지각 있는 생물은 아니로되 성인(聖人)이라 하겠구나.’ ‘후한서’에 따르면 이고(李固·93∼147)는 ‘늘 걸어서 스승을 찾아다녔다’. 이 부분에 ‘부급(負(겁,급))하여 스승을 찾아 10년 동안 오경(五經)을 공부했다’는 주석이 달렸다. 급((겁,급))은 휴대용 책궤, 부(負)는 짊어진다는 뜻. 이로부터 부급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공부하러 간다는 뜻이 됐고, 유학 떠나는 것을 부급종사(負(겁,급)從師)라 하였다. 현대 중국의 쑨원도 ‘중국혁명사’(1923년)에서 말했다. ‘청나라가 쇠퇴하여 환란이 극에 달하자 근심 발분한 사대부들이 부급하여 유럽, 미국, 일본으로 향하였다.’ 시인 이시영은 시 ‘툇마루’에서 회고한다. ‘아버지 방이 있던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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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2,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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