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폭의 그림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을 다독이고 위로할 때가 있다. 그 기능을 한다는 말은 그림에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벚꽃 위의 새’는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걸까. 그림을 보면 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차분해 보이고, 이보다 더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조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를 반긴다. 꽃들이 만개한 벚나무 가지 위에 막 내려앉은 흰 새, 새가 내려앉은 충격에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들, 생김새로 보아 벚꽃이 아니라 복숭아꽃 같지만 아무런들 어떠랴, 벌써 저만큼 달아난 노랑나비, 화들짝 놀라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새를 쳐다보는 청개구리. 그럴 리는 없겠지만 초성, 중성, 종성을 결합해 ‘중섭’이라 하지 않고 그것들을 일렬로 늘어놓은 화가의 서명(ㅈㅜㅇㅅㅓㅂ)마저도, 그림의 한 부분인 듯 평화롭고 평온해 보인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청개구리가 가지 위에 먼저 앉아 있었고 새가 나중에 내려앉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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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31,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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