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피란 시절,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부산에 살았다. 그는 동구 범일동에 거처를 구한 뒤 부산 도심의 광복동과 국제시장 등지를 오가며 생계를 마련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은 금강다방 르네쌍스다방 녹원다방 늘봄다방 등 광복동 일대의 다방을 즐겨 찾았다. 물감 구입할 돈이 부족했던 그는 다방에서 담뱃갑 은지에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명작들은 이렇게 피란기 부산의 궁핍에서 태어났다. ▷6·25 발발 두 달 후인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 정부가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대통령과 관료 정치인, 군인과 군수물자가 부산에 모였다. 대학도 부산으로 옮겼고 지식인 예술인들은 광복동으로 몰렸다. 40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피란기 100만 명에 달했다. 국제시장이 급팽창한 것도 이 시기였다. 20세기 부산의 역사에서 6·25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최근 문화재청은 부산시가 신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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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0,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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