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죽고 열흘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는 전보가 고향집에 왔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5년 3월 6일 친구 문익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가 집도하는 장례식에서 윤동주의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송되었다. 윤동주 묘비 측면을 보면 매장은 1945년 3월 6일 했고, 6월 14일 묘비석을 세웠다고 쓰여 있다. 그를 매장한 다음 날인 3월 7일 마치 동생의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떠나듯 송몽규가 사망했다. 이후 가족들이 대부분 조국으로 돌아오고 명동마을을 떠나면서 저 묘는 잊혀졌다. 1985년 5월 와세다대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교수가 찾아오기 전까지 묘지는 바람과 새떼와 양떼가 노니는 동산이었다. 오무라 교수는 동생 윤일주 교수가 준, 묘비 앞에서 가족 다섯 명이 찍은 사진을 들고 연변대 팀과 함께 헤매다가 사진에 있는 비석을 찾았다. 1990년에는 송몽규의 묘소도 찾아 윤동주 묘소 가까운 곳으로 이장했다. 윤동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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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7,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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