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선조 때 이후백(李後白)이 이조판서가 되었는데, 공론(公論)을 따르는 데 힘쓰고 청탁을 받지 않아 비록 친구라 할지라도 자주 들락거리면 몹시 옳지 않게 여겼다. 하루는 친척이 찾아와서 벼슬자리를 얻었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는데, 이후백이 얼굴빛을 바꾸고 한 책자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여기 적어 두고 장차 벼슬자리에 올리려 하였는데, 지금 그대가 구하는구나. 구해서 얻는다면 공정한 방법이 아니다. 애석하구나, 그대가 만약 말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자 그 사람은 부끄러워하면서 물러갔다. 이유원(李裕元·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10권 ‘용인(用人)’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름을 적어놓았는지 확인하자고 덤빌 수도 없겠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부탁한 사람도 덜 민망하게 만드는 ‘청탁 거절의 묘수’인 듯합니다. 비슷한 이야기 몇 가지를 더 소개합니다. 세조 때 한계희(韓繼禧)는 대신이 자기 자식을 위하여 관직을 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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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05,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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