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성 노동자가 을밀대 지붕 위로 올라갔다. 불황이기에 평양에 있는 열두 개 고무공장 사장들이 2300여 노동자에게 임금을 못 주겠다고 통고했다. 노동자들은 굶어 죽겠노라며 ‘아사(餓死)농성’을 시작했고, 1931년 5월 29일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최초의 고공투쟁을 시작했다. 여성 노동자 문제는 1930년대에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남자보다 값싼 여성 노동자를 대거 고용한 잔인한 시대였다. 윤동주 시 ‘해바라기 얼굴’에도 여성 노동자가 등장한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공장)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 들어 집으로 온다 ―‘해바라기 얼굴’(1938년 5월) 친필 원고지를 보면 4행에 ‘공장에 간다’라고 썼다가 ‘공장’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일터’로 고친 흔적이 있다. 왜 지웠을까. ‘노동자’ ‘공장’ ‘프롤레타리아’ 같은 단어들은 파시즘 사회에서는 위험한 단어였다. 부담을 느꼈기에 윤동주 스스로 지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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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2,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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