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인들이 숭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구역에 멋대로 점(點)을 쳐서 군용지라는 푯말을 세우고 경계를 정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번번이 군용지라는 명목으로 땅을 빼앗아 갔다.” 구한말의 애국지사 황현이 ‘매천야록’에 남긴 글이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제가 1906년 용산에 2개 사단 규모의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해 무단으로 사용하던 시기의 일이다. 일제는 패망할 때까지 이 기지를 운영했고 1945년 광복이 된 후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했다. 그 이전에도 용산은 외국군과 인연이 깊었다. 13세기 고려를 침입한 원나라 군대는 용산을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16세기 임진왜란 때는 왜군과 명군이, 19세기 임오군란(1882년) 때는 청나라 군대가 주둔지로 이용했다. 용산은 북으로는 남산을 머리에 두고 남으로는 한강을 바로 앞에 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터다. 군인들도 이 점을 주목했다. 용산에 본거지를 틀면 남산의 보호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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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8,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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