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이 다가오는 게 느껴진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기가 망설여질 때, 주말에 모임을 자꾸 피하고 집에만 있을 때, 동창회에서 “그래도 넌 네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 같은 말을 들을 때. 가만 듣던 친구는 웃었다. “가슴 아프게 자꾸 그런 말 할래?” 영화를 꿈꾸는 친구였다. 며칠 뒤 문자가 와 있다. ‘네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박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서) 어느 밝은 시절, 우리들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자유를 외치는 젊음의 열기로 가득한 어떤 영화에서 이름을 따 왔지만, 정작 그 영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 동아리였다. 시나리오는 일기장에 불과했고, 우리들은 자주 상업영화의 저열함을 논했지만, 직접 영화를 만들고 일주일 정도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자주 서로를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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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8,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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