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바로 서야 명분도 서고 방향도 선다. 이것은 최근에 한국을 찾았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부드럽지만 따끔한 말로 우리에게 환기한 상식의 소리다. 그는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말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눈에는 한국 여성들이 일본 파시스트들에게 당한 폭력이 유대인들이 나치에게 당한 홀로코스트와 다를 바 없음에도, 한국인들이 그 말을 사용하는 것이 어이없었던 모양이다. 그의 말대로 누구를 ‘위안’하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여야 한다. 사전은 ‘위안’을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이라고 정의하고, 다시 그 속에 있는 ‘위로’를 ‘남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달래 주려고 따뜻한 말이나 행동을 베푸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위로’의 결과물이 ‘위안’인 셈이다. 그래서 위안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강요하는 것이 되면 질서가 파괴된다. 언어의 질서, 윤리의 질서. 일제 파시스트들은 그 질서를 파괴한 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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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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