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봄. 평양의 공기는 음산했다. 2월경부터 쌀값이 미치기 시작했다. 1kg에 50원 정도였는데 자고 나면 올라 석 달쯤 뒤엔 230원까지 치솟았다. 120원쯤 됐을 때 사람들이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냐”며 술렁거렸다. 200원이 넘었을 때 거리는 축 늘어져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넘쳤다. 식인 사건 등 범죄 소식이 퍼지며 도시 분위기는 불과 몇 달 만에 흉흉하게 변했다. 난 1994년 12월 말 기차역에서 만난 평북 구성의 여인에게서 대량 아사 소식을 처음 들었다. 군수공장이 밀집한 그곳 노동자구(區)에선 여름부터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시작했고 가을쯤부터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불과 100여 km 떨어진 곳에서 그런 참사가 벌어지는 줄 몰랐다. 그때 북한은 그런 곳이었다. 몇 달 뒤 굶주림은 평양까지 순식간에 삼켰다.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를 외부에선 1995∼1998년으로 보지만, 실은 1994년부터 시작됐다. 아사자 수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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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8,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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