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7월 17일 전몰 희생자를 추모하는 오키나와 ‘비명의 탑’. 아키히토 왕세자의 참배 순간 화염병이 날아왔다. 참호에 숨어 일주일간 버틴 두 청년의 거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옥쇄(玉碎) 작전으로 12만 명이 넘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됐다. 전쟁 책임이 있는 일왕 장남의 참배마저 용납할 순 없었던 것이다. 사건 수습 후 왕세자는 참배를 마치고 떠났다. ▷아키히토 일왕이 20일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마(高麗)신사를 처음 방문했다.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과 유민 1799명이 망국의 한을 안고 1307년 전 이곳에 정착했고, 후손들은 약광을 기려 신사를 세웠다. 참배하면 출세한다는 속설도 있다. 참배 뒤 총리에 오른 정치인만 사이토 마코토를 비롯해 6명. ‘수사가 풀린다’는 얘기도 한때 퍼져 검사들도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 이곳 사람들은 고마나베를 즐긴다. 절인 배추에 된장 간장을 풀어 푹 끓인 고구려 음식이다. ▷간무(桓武)는 일본 50대 왕으로 49대 고닌왕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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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2,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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