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역사는 얼마나 장구한가. 원시인들은 어떻게 소통했을까. 중세 언어인 라틴어나 한문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근대에 들어 민족어가 탄생하면서 개인은 비로소 단독자로서 자유를 얻는다. 1446년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 후, 한글은 조선인에게 존재와 자유를 주었다. 1938년 2월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4월 9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한다. 입학하자마자 핀슨홀 3층 ‘천장 낮은 다락방’에서 고종사촌 송몽규, 브나로드 운동을 열심히 했던 강처중과 한방을 쓴다. 사실 그리 기분 좋은 시기만은 아니었다. 1938년 3월 총독부는 ‘일본인과 조선인 공학(共學)의 일원적 통제를 실현’한다면서 조선어를 수의(隨意)과목, 곧 선택과목으로 만들었다. 조선어를 폐지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국어(일본어)를 쓰는 학생과 안 쓰는 학생을 구별하여 상벌을 주라는 훈시가 내렸다. 조선어로 동시 쓰면 누가 읽겠어, 염려하는 친구 윤석중의 말에 “땅에 묻지”라고 박목월이 경주에서 말했던 해였다. 재일(在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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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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