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6년 3월 다시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4월 6일 5년제 일본학교인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한다. 대학에 진학하려면 기독교계나 민족계가 아니지만 광명중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착잡한 심경을 시 ‘이런 날’(1936년 6월 10일)에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는 날’로 표현하고 있다. 오색기는 만주국 국기이고, 태양기는 일본 국기다. 윤동주에게는 서슴없는 능멸이었다. 모순을 모르고 ‘머리가 단순’하게 된 아이들을 깨우듯이, 1936년 8월 13일엔 동아일보가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말소했다. 이 시기에 윤동주는 여러 시인의 작품을 스크랩해 두곤 했다. 1935년 10월 27일에 간행된 ‘정지용 시집’을 동주는 평양에서 1936년 3월 19일 구입해 내지에 서명해 둔다. 이미 읽어 왔겠지만 시집을 구입하고 더욱 깊이 읽었던 윤동주는 정지용 시 10여 편을 모방하며 습작해 본다. 가톨릭 신자였던 정지용은 ‘가톨릭청년’을 편집했는데, 광명 시절 윤동주는
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ift.tt/2eCmdSE
via
자세히 읽기
September 06, 2017 at 03:00A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