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으로 파괴된 만주는 서글픈 변두리였다. “돈 벌러 간 아버지 계신 만주땅”(‘오줌싸개 지도’)은 떠도는 디아스포라의 유랑지였다. 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 명동촌(明東村),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변두리에서 1917년 12월 30일 한 생명이 태어났다. 산들이 두 줄로 줄다름질치고, 여울이 소리처 목이 자젓다. 한여름의 햇님이 구름을 타고, 이 골작이를 빠르게도 건너련다 ―윤동주 ‘곡간’(1936년 여름)에서 산들이 두 줄로 줄달음질치는 골짜기(谷間·곡간)에 있는 명동마을에 꽃이 피면 무릉도원 그 자체였다. 집 근처 풍경을 동생 윤일주는 생생하게 남겼다. 명동집은 마을에서도 돋보이는 큰 기와집이었다. 마당에는 자두나무들이 있고, 지붕 얹은 큰 대문을 나서면 텃밭과 타작마당, 북쪽 울 밖에는 30주가량의 살구와 자두 과원, 동쪽 쪽대문을 나가면 우물이 있었고, 그 옆에 큰 오디나무가 있었다. 우물가에서는 저만치 동북쪽 언덕 중턱에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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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9,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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