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해골 같은 사람이 두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는 모습.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아하’하고 단박에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바로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다. 이 그림은 광고, 영화, TV, 현대미술 등에서 수없이 패러디되거나 복제되어 ‘절규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노르웨이 화가의 그림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죽음, 질병, 불안, 공포. 어린 시절부터 뭉크는 네 단어와 무척 친숙했다. 5세 때 어머니가 죽은 후 13세 때 누나도 잃었다. 아버지는 강압적이었고, 여동생과 자신에겐 정신질환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어린 시절의 불행은 훗날 그의 예술의 주제이자 원동력이 됐다. 평생을 고독 속에 살았던 뭉크에게 예술은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한 몸부림이자 유일한 치유제였다. 그는 대상을 관찰해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본 것을 기억해 그렸다. 절규도 오슬로 에케베르크 언덕의 산책길에서 본 저녁노을에 대한 기억을 그린 것이다. “해질 무렵 나는 친구 둘과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mZM6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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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5, 2019 at 03:3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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