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IMF 위기’로 기억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1995년 11월 김영삼(YS) 대통령이 일본의 역사 망언과 관련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일격을 날린 이후 독도, 위안부, 한일 어업협정 문제까지 겹쳐 97년 11월 한일갈등은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11월 6일 독도 접안시설 준공식이 열리자 자민당 의원들은 ‘일본 국토의 침범’이라며 흥분했고, 우리 외무부는 “한국 영토인 독도에 대해 일본 정부는 다신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고 시퍼런 논평을 날렸다. ●한일 외교전쟁 중 닥친 IMF위기 그 무렵 우리 금융시장은 날개 없는 천사처럼 추락 중이었다. 10월 28일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하루 변동폭 하한선까지 떨어져 외환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1월 들어선 ‘서울을 떠나라’(5일 블룸버그 통신), ‘한국은 동남아 외환위기를 능가하는 위기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6일 월스트리트저널)는 외신이 줄을 이었다. 다급해진from 동아닷컴 : 동아일보 오피니언 뉴스 https://ift.tt/2Nv3s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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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3, 2019 at 01:3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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