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서에는 황사에 관한 기록이 여럿 내려온다. 주로 ‘흙비(土雨)’라 불린 황사는 조선왕조실록 내 연평균 2회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중 명종 5년(1550년)의 기록을 보면 “한양에 흙비가 내렸다. 전라도 전주와 남원에는 비가 내린 뒤에 연기 같은 안개가 사방에 꽉 끼었으며 지붕과 밭, 잎사귀에도 누렇고 허연 먼지가 덮였다. 쓸면 먼지가 되었고, 흔들면 날아 흩어졌다”라고 당시의 모습을 표현했다. 요즘의 황사 피해와 비슷하다. 다만 당시 사람들은 황사를 자연현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임금이나 위정자가 정치를 잘못하거나 부덕한 것에 대해 하늘이 내리는 벌로 여겼다. 임금이 하늘에 죄를 고하는 제사를 올리거나 엉뚱하게 백성들에게 근신의 의미로 금주령이 내려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황사는 중국과 몽골 남부지역에 걸친 고비사막에서 발원한 모래 먼지를 일컫는 말로 강한 바람을 타고 수 km 위의 성층권까지 도달한 뒤 가까이는 중국과 우리나라, 멀리는 미국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황사의 발원지인 사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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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1,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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