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싫은 소리’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조직의 장(長) 자리에 앉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과장, 부장, 사장, 하다못해 학교시절 반장도 입바른 소리 들으면 내색은 못해도 속으론 밉다. 왕에게 도덕정치를 설파했던 조광조도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 간신의 모함이지 왕이 자신을 죽일 리 없다며 통곡했다는 전언에 중종은 코웃음을 쳤다. “조광조는 내 곁에 오래 있어서 내가 잘 안다”면서(참고로 나는 조광조 식의 정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존재는 필요하다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어릿광대가 왕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조롱하듯, 언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엔 광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 저 사람은 싫은 소리 하는 게 직업이라고 인정을 한 뒤, 그 사안을 다시 짚어보면 안 보이던 점이 보일 수도 있다. 피차 개인적으로 미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서로의 업(業)을 살려주니 외려 고맙다. “혁신적 포용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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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05, 2019 at 04:3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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