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는 망가져도 산하는 여전하여/ 성 안에 봄이 들어 초목만 무성하다. 시국을 생각하니 꽃을 보아도 눈물이 흐르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는 석 달 내내 사그라지지 않으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의 가치. 흰머리 긁적이자 더욱 짧아져/ 아예 비녀조차 꽂지 못할 듯.’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춘망·春望‘, (두보·杜甫·712~770) 안록산의 반군이 수도 장안 부근까지 쳐들어오자 당 현종은 사천으로 피신했고, 그 와중에 태자(숙종)가 황위를 계승했다. 소식을 접한 두보는 가족을 친척집에 맡겨둔 채 황제를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숙종의 행재소(行在所)로 향했고, 도중에 반군의 포로로 잡혀 장안으로 압송됐다. 당시 그는 미관말직인데다 명성도 높지 않았던 터라 곧 풀려났다. 시는 장안이 함락된 이듬해 봄, 사그라지지 않는 전화(戰火) 앞에 그저 무력하기만 한 시인의 탄식을 담았다. 무성한 초목, 꽃과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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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8, 2019 at 04:2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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