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20년 동안 일군 운수업을 정리하고 1945년 귀국길에 올랐다. 현금을 갖고 귀국하지 못하니 어선을 한 척 사 왔다. 그러고는 본가에서 10리 떨어진 축산항에서 수산업을 시작했고, 성공해 대형 어선 3척(삼화호, 삼중호, 삼광호)을 거느린 선주가 됐다. 이 어선들은 20년 동안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집 어선들은 본래 목적인 고기잡이에만 동원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됐다. 6·25전쟁이 터지자 경북 영덕도 안전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우리 가족과 선원들의 가족을 모두 태우고 울산 방어진으로 피란을 갔다. 그리고 다시 부산 영도로 내려갔다. 방어진과 부산에서 고기잡이를 계속했다. 어선은 피란의 도구로서도 효용이 높았다. 육로로 가는 피란길은 사람도 힘이 들뿐더러 인민군에게 잡힐 우려도 컸지만, 바다를 통한 피란은 편하고 무엇보다 안전했다. 피란 중에는 통상 먹고살기가 그렇게 어려웠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어선이 있었으니 고기를 잡아 생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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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19, 2019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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