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대 검문소를 통과하여 달리는 도로는 한적했다. 봄과 여름에 한 번씩 갔으나 화려했던 포구를 기억하는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 세 번째 방문이다. 철책선을 뚫고 들이치는 겨울바람은 사람의 온기로 덥힐 수 없어 더욱 매서웠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북한의 풍경도 황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 산이포에 정박한 선박은 두 갈래로 오르내렸다. 한 갈래는 예성강을 따라 황해도 연백을 거쳐서 개성으로 올랐고, 또 한 갈래는 한강을 따라 한양으로 연결됐다. 산이포는 강화도 최대 포구였으며, 전국에서도 손꼽혔다. 100여 척의 선박이 정박했고, 700여 가구가 주거지를 형성했다. 5일장이 열리면 황해도 연백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면사무소, 방직공장, 정미소 등이 들어섰고, 선원들이 찾는 주막과 각종 상점이 성황을 이뤘다. 강화도는 지정학적으로 서울의 목구멍이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관문이었고, 그 중심에 산이포가 있었다. 지금은 포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포구 앞으로 군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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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1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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