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보다 훨씬 무거운 죄목인 ‘소요(騷擾)죄’는 유신시대와 계엄령 때 외에는 딱 두 번 등장했다. 1986년 5·3인천사태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시위 때다. 필자는 두 현장을 모두 봤다. 5·3사태 때의 기억이다. 옛 인천시민회관 앞 사거리에 앉아 구호를 외치던 수만 명의 시위대 속으로 경찰 페퍼포그 장갑차가 곤봉을 휘두르는 백골단(사복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시동이 꺼져 군중 속에 갇혀 버렸다. 시위대가 각목으로 차문을 떼어냈다. “화염병 가져와!” 곧 화염병을 던져 넣을 기세였다. 그때 다시 시동이 걸린 페퍼포그차는 간신히 도주했다. 아슬아슬했다. 만약 화염병을 넣었으면 폭발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났을 것이다. 군중집회에선 순식간에 예기치 않은 대규모 유혈사태가 날 수 있음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그런 걱정이 다시 든 것은 거의 30년 후인 2015년 11월 14일 토요일 오후의 민중총궐기 현장이었다. 당시 채널A 파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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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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