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문구를 읽을 때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매체의 견해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곱씹을 여지가 있어 동의하지 않는 논리에도 목소리를 준다니. 이런 세련된 태도를 두고 ‘톨레랑스’, 즉 관용이라 하던가. 원고 주제를 주지하고자 전화를 걸었을 때 이 코너, ‘2030 세상’의 담당 기자가 그리 말했다. 미리 알려줄 필요 없으니 자유로이 선정하라고. 나는 그 심드렁한 관용에 감명받았고 이내 주제를 바꿨다. 그리하여 오늘의 이야기는, 이 코너의 ‘30’을 맡고 있는 내겐 세상에 관용할 수 없는 말이 참 많다는 것이다. 매체의 톨레랑스가 어째서 나의 편협함을 낳았느냐고? 사실 적잖이 청개구리 심보인 듯한데, 얻어 걸리듯 일종의 메타포로 읽힌다면 좋겠다. 나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에 맞선다는 일부 지역 주민의 말을 관용할 수 없다. 국내 사례를 통틀어 장애인 관련 시설이 집값이나 치안에 악영향을 미친 전례가 없으니, 그들은 실상 장애인 자체를 혐오하고 있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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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0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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