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주는 말이 없다가도 이따금 한마디씩 하면 뜻밖의 소리로 좌중을 놀라게 했다”는 친구 유영의 증언처럼, 말수 적은 동주가 글을 남기지 않은 두 번의 침묵기가 있었다. 1938년 연희전문 1학년 9, 10월경 몇 편 쓰고 9개월쯤 지나고, 2학년 1939년 9월에 ‘자화상’, ‘투루게네프의 언덕’ 등을 쓴다. 다시 긴 침묵으로 들어가 1940년 12월까지 1년 2, 3개월의 침묵 기간을 지낸다. 침묵을 끝내고 ‘팔복’ ‘위로’ ‘병원’을 쓴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팔복’)라는 말은 끝없는 절망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이다. ‘팔복’은 냉소적인 풍자 혹은 절망시일까. 오히려 “슬퍼하는 자(와 함께하는 이)는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에 적극적으로 긍정한 시다. ‘팔복’과 같은 시기인 1940년 12월에 쓴 ‘병원’을 보면 더 명확하다. ‘나도 모를 병’을 의사도 모른다 한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식민지 공간의 은유일 수 있다. 3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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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08,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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