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을 주저하시며) 우리나라 사람은 자발적으로 무엇을 못 하는 성격이 있으니 그 방면을 장려하지 않고는 별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개성상인 이외에는 일본인을 이기지 못했다. 미국이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한 대한(對韓) 원조도 계속하지는 않을 것이니 우리가 자립하지 않으면 노예가 되는 것 외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원자력을 개발하고 이순신 장군을 이을 기술자를 길러야 할 것이다.” 1960년 2월 16일 이승만 대통령의 국무회의 어록이다. 한국 원자력제도가 정비된 것은 1955년 유엔 원자력평화이용회의가 열린 지 3년, 일본보다 4년 뒤졌다. 그때는 외무부 장관도 해외출장 가서 손수 양말 내의 빨며 외화를 절약하던 시기다. 정부 예산의 반 이상이 미국 원조로 충당되고 공무원의 출장 외화는 다과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직접 결재하던 원시 시절이었다. 그 ‘절대적’ 외화 부족 시기에도 백지상태의 원자력 연구인력을 키우기 위해 해외 유학에 국가장학금을 풀었다. 나중에 과학기술부 장관까지 지낸 국가장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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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04, 2017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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