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푸줏간과 여염집에서 불법으로 도살하는 것과 교외(郊外)와 강가 포구의 푸줏간에서 하루에 잡는 소가 몇백 마리나 됩니다. 팔도(八道)를 통틀어 계산하면 하루에 잡는 소가 수천 마리는 될 것입니다.” ―1858년 충청병영계록(忠淸兵營啓錄) 백정은 고려시대 양수척(楊水尺), 화척(禾尺)으로 불렸다. 이들은 버들고리를 만들어 팔거나 사냥, 도축업 따위를 일삼으며 유랑생활을 했다. 몽골의 일족인 달단 등으로 이뤄진 북방 유목민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세종 때 이르러서야 제민화(齊民化) 정책으로 호적에 편입되어 백정(白丁)이 됐다. 강도나 살인 사건이 일어나 범인을 잡으면 절반은 백정이었을 정도로 많은 범죄를 저지른 데다, 살생을 한다는 이유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고 갖은 차별만 받았다. 그들은 유목민의 습속으로 인해 농사에는 적응을 못하고 주로 사냥이나 도축업에 종사하면서 ‘소나 돼지를 잡는 사람’으로 의미가 굳어졌다. 백정은 소를 잡는 도축장을 천궁(天宮)이라고 불렀다. 죄를 지어 땅으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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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4,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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