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좋아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해롭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일화를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한다. 기원전 522년,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를 정복했을 때였다. 그는 이집트 왕 프삼메니투스를 치욕스럽게 만들 작정으로 가족과 친지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그런데 이집트 왕은 딸이 노예가 되어 물을 길러 가고 아들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슬퍼하지 않더니, 자신의 신하가 거지가 되어 병사들에게 동냥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거지로 전락한 신하의 불행은 울음으로 대신할 수 있지만 자식들의 불행은 울음으로 대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을 잃고 돌이 되어버린 신화 속의 니오베처럼, 이집트 왕은 자식들의 비참한 운명 앞에서 돌처럼 무감각했다. 몽테뉴가 해롭다고 한 슬픔은 영혼을 마비시키는 그러한 극단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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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4, 2020 at 03:16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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