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온수(劉溫수)는 후당(後唐)에서 시작해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를 거쳐 송(宋)나라에 이르기까지 다섯 나라의 조정에서 벼슬을 했는데, 청렴함으로 이름이 높았다. 송나라 태종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에 그의 명성을 듣고 사람을 시켜 많은 돈을 보냈다. 유온수는 감히 왕의 돈을 물리치지 못해 한쪽 방에 넣고 문을 봉인했다. 태종이 다음 해 사람을 통해 좋은 부채를 선물로 보내면서 살펴보니 지난해 돈을 넣은 문이 여전히 봉인된 상태였다. 이 일로 그의 청렴함은 더욱 알려졌고, 후대에도 귀감이 됐다. 그러나 조선 중기의 학자 배용길은 그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렸다. 왕조가 바뀌었는데도 계속 신하 노릇을 해 절의를 지키지 못한 것은 개나 돼지만도 못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돈을 받고 쓰지 않고 쌓아둔 것만 가지고 예의와 염치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라면 받아야 하고 물리쳐야 할 것이라면 물리치면 그만인데 받아놓고 봉인한 것은 그 마음이 순수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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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 2018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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